2부 교실수업, 공교육의 최전선 | ▪ 학생들은 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까? ▪ 교사들은 왜 교실 문을 열기를 싫어할까? ▪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 ‘거꾸로교실’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교실 개혁의 아이디어 ▪ 서양 근대 혹은 동아시아형 교육을 넘어서기 |
▪ 학생들은 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까?
학교 붕괴 현상의 문제화:
수업 장면 | 생활 지도 장면 |
∙학생들이 엎드려 잔다. ∙수업을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잡담을 하거나 딴짓을 한다. ∙교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수업 중 돌아다니거나 허락 없이 빠져나간다. | ∙교사가 불러도 오지 않는다. ∙도무지 학교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교사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 ∙112 신고 등 경찰을 부른다. ∙교사를 대화 상대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
왜 1999년일까?
IMF(1997) 이후 급속하게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의 재편은 전통적인 학업과 취업의 파이프라인이 지니는 유용성을 상당한 정도로 소진시켰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자동적으로 무엇이 보장되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아이들도 이러한 것을 감지한다.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교육의 역설’ 당사자가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을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유과정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교육받는 내용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를 물어보고 교사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교육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적 활동이 노동이 아니고 소비였던, 그러니까 가사 일을 돕는 경험보다 먼저 돈을 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반대로 지금 아이들의 거의 절반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회 경험이 물건 사기였을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교육 서비스를 사는 사람’이라는 위치에 서서 교육의 가치와 유용성을 따져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배우는 즐거움, 세상에 대한 앎, 타자에 대한 이해, 높은 품성의 도야와 같은 교육 자체의 고유한 가치보다는 화폐로 교환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서 그 가치가 더 많이 결정된다.
시장을 지배로부터 고유한 삶의 영역들을 지켜 내고 그런 삶의 영역에서 학생들이 입문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
수업에 집중을 안 하는 것일까 못 하는 것일까? ‘학력의 저하는 노력의 결과’‘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보가 대량으로 쏟아지고 빠르게 전환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 ’
아이들만을 탓하는 것이 옳을까?
아이들을 탓할 것인가? 시스템으로서의 학교교육과 사회 자체를 문제 삼고 개선해야 하는가? 아마도 후자가 옳을 것이다.
문제는 교육자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배움의 양상을 가능한 한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가르치는 내용과 학습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배움의 환경을 구안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교사들은 왜 교실 문을 열기를 싫어할까?
한국의 폐쇄적 교사 문화의 기원
한국 교사 문화의 중요한 특성으로 개인주의와 고립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고립주의적인 교사 문화가 오랜 문화적 관행으로 굳어져서 습속으로 존재하고 있다.
한국 교사 사회의 폐쇄성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폐쇄적 교사 문화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인 교장과 장학사의 주기적인 교실 시학(장학), 순사의 감시와 감독 등은 자신의 교실에 들어오는 타자와 적대적으로 마주 서게 했다.
또 해방 후의 권위주의적 정보는 교사들이 소위 불온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학교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을 통해 장학이라는 명목으로 교사들의 교육 활동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과 유산은 많은 교사들에게 교실은 간섭받지 않는 교사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내었다.
고립적 교사 문화의 숨겨진 기능
교사들은 쏟아지는 공문 처리와 행정적인 일 때문에 수업과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관리 영역의 비대화가 고립적인 교사 문화가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낸다. 이런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교사 집단과 관리자들에게 암묵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 영역은 그 활동의 의미와 성과가 쉽게 측정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에 비해 관리 영역은 관료적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학교장은 교육 활동보다 관리 영역을 중시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교육 활동을 일부 희생시키더라도 관리 영역을 잘 작동시키는 것이 유능한 교장으로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공문 처리와 같은 행정적인 일만 잘하면 교육 활동을 잘하든 못하든 별로 간섭을 받지 않는다. 즉, 관리자와 교사 모두에게 기능적으로 유익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고립적 교사 문화는 유지되고 있다.
교사 학습 공동체와 학교 문화 변화
오늘날 좋은 교육은 개별 교사의 우수성이 아니라 교사들의 협력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가능하다.
▪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미국 학자 짐멜만의 좋은 수업에 대한 견해
짐멜만이 제시한 교실수업에서 지양해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수업 실천 목록(113쪽)
교사 주도적, 학생의 수동적 참여, 정보 전달, 침묵, 필기하는데 소비하는 시간, 교과서나 기초 도서, 수박 겉핥기식, 단순 암기, 경쟁과 성적 강조, 능력별 집단, 특별 프로그램, 표준화된 검사 |
독일 학자 마이어의 좋은 수업에 대한 견해
좋은 수업은 민주적인 수업 문화의 틀 아래서 교육 본연의 과제에 기초하여 그리고 성공적인 학습 동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의미의 생성을 지향하면서 모든 학생의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수업이다.
1. 수업의 명료한 구조화(과정, 목적, 내용의 명료성; 역할의 명료성, 규칙에 대한 합의 의례와 자유 공간) 2. 학습 몰두 시간의 높은 비율(훌륭한 시간 경영과 시간 엄수; 수업의 조직화에 드는 시간의 절약; 일과 편성의 리듬화 등 통해서) 3. 학습 촉진적인 분위기(상호 존경, 규칙의 준수, 책임 부여, 공정성과 배려를 통해서) 4. 내용적인 명료성(납득할 수 있는 과제 설정, 주제적 전개 과정의 합당성, 수업 결과의 명료하고 구속력 있는 정리를 통해서) 5. 의미 생성적 의사소통(계획 단계에서의 학생 참여, 토론 문화, 의미 회담, 일일 학습장 작성과 학생과의 피드백을 통해서) | |
6. 방법의 다양성(풍부한 연출 기법; 행동 방식의 다양성; 수업 진행 형식의 변용, 방법적 기본 형식들 간의 균형) 7. 개별적인 촉진(자유 공간, 참을성과 시간을 통해서; 내적인 차별화와 통합을 통해서; 개별적인 학습 상태 분석과 상호조율된 촉진 계획들을 통해서; 고위험군에 속한 학생들에 대한 특별한 촉진) 8. 지능적 연습(학습 전략을 스스로 의식하게 함으로써; 정확한 연습 과제, 목적 지향적인 지원과 "연습을 장려하는" 틀을 통하여) 9. 분명한 성취 기대(교과 과정이나 교육 기준에 맞는, 그리고 학생의 성취 능력에 합당한 학습 내용의 제시 그리고 학업 진보에 대한 계속적이고 촉진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10. 준비된 환경(질서정연함, 기능적인 실내 배치와 학습도구의 완비를 통해서) |
좋은 수업에 대한 개별 이론을 위하여
교사들은 일반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하되 반성적 실천가로서 반성과 숙고를 통해서 좋은 수업에 대한 개별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 ‘거꾸로교실’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교실 개혁의 아이디어
간단하면서 혁신적인 개혁이 이루어진다? 동의할 수 있는가?
새로운 교육 공학의 도입과 한계
새로운 기술이나 공학이 열어 놓은 가능성을 교사의 역할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상상력의 부족으로 생겨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교사의 역할에 고착화되어 있는 경우 새로운 공학은 교사의 현재적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거꾸로교실’이라는 새로운 발상의 시작
살만 칸의 칸 아카데미
조나단 버그만과 아론 샘즈(콜로라도주 우드랜드 파크 고등학교 화학교사)
21세기 교육혁명 – 미래 교실을 찾아서
거꾸로교실은 참여형 수업으로의 변화를 통해서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방식을 변화시키며, 도래 관계의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학생들의 성적과 학습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거꾸로 교실, 강력하고 혁신적인 대안
거꾸로교실이 지니는 교수-학습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을 경우 지식 전달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동영상이 반복적으로 활용됨으로써 새로운 수업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식 공부 방식을 오히려 강화시킬 우려도 있다.
오늘날 학습의 핵심은 전달되는 지식의 획득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사고하고 협력적으로 탐구하는 경험이 학습에서 더 중요하다.
교사의 주된 역할은 내용 전달이 아니다. 학습자들이 스스로 혹은 협력적으로 학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수업을 디자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교사의 역할이 된다.
거꾸로교실을 시작하는 교사들을 위하여
“거꾸로배움”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하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성실하게 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 서양 근대 혹은 동아시아형 교육을 넘어서기
공부 시대의 끝 = 동아시아형 교육의 종언
동아시아형 교육: 압축적 근대화, 경쟁 교육, 산업주의 교육,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적 통제, 강렬한 내셔널리즘, 교육의 공공성 부족 등
국가의 번영과 함께 경쟁을 통한 개인의 사회 이동이라는 교육 목적으로 공부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압축적 근대화 모델이 지배하는 교실의 양상
전달 중심의 정합적 체계: 객관적 지식으로 채워져 있는 교과서 –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 지식 수용자로서의 학생 – 지식 전달 정도를 평가하는 객관적 시험
근대 교육이 상정하는 지식에 대한 특정한 가정은 바로 객관적인 지식관이다. 근대 교육은 인간의 주관과 독립된 객관적인 지식이 존재한다는 생각 위에 성립했다. 교과서는 그런 객관적인 지식을 수록하고 있다고 간주된다.
서양 근대 교육의 극복: 객관적 지식 습득을 넘어서는 공부
객관적 지식 습득 ≠ 공부
현대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객관적 지식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객관적 지식 습득이 공부라는 생각 뒤에 호기심과 지배욕과 같은 비윤리적 동기가 숨어 있어서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비윤리적 결과가 생겨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대의 인식론은 객관적 지식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식은 인식 주체에 바깥에 발견되기를 기다리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합의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현대 인식론의 대세이다.
누군가가 미리 발견해 놓은 객관적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전수받거나 혹은 학습자가 직접 그 발견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공부라는 관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동의 지식을 구성해 가는 사람들의 지식 구성 행위를 이해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지식이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면 서로 경합하는 지식, 즉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통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공부 방식은 무엇일까?
인식 주체가 호기심과 지배욕에 의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웃과 세계 전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터하여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전문적인 교사는 수업과 교육에서 등장하는 경쟁적인 요구들을 균형 잡는 데 능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습관 없이 사는 습관”을 익히는 새로운 학습
3차 학습이란 “규칙성을 깨는 방법,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습관화를 막는 방법, 조각의 경험들을 이리저리 꿰맞춰 지금까지 없었던 생소한 유형을 새로 만들고 다른 모든 유형들은 ‘잠정적으로’만 수용 가능한 것으로 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 토의 주제: 교사는 객관적 지식론과 구성적 인식론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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